천만돌파 영화 부산행. 직선적 스토리 속에 담은 깊은 의미

0
<경기 미디어리포트 뉴스> 박정훈 기자

부산행. 내재화된 악의 평범성 이야기하다.

액션과 스릴러. 그것만으로 충분히 인정받는 영화들이 있다. 수많은 시나리오들도 이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액션과 스릴러란 큰 틀에서 평면화된 인물을 만들기도 하고 영화전체를 관통하는 직선적 스토리를 이어가기도 한다.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하는 영화는 그 선에서 멈춘다. 그렇지 않은 영화는 기록을 남긴다. 바로 이번 천만관객을 돌파한 부산행이 그러하다. 영화는 초반 한국에서 좀비물이 통할 것이냐는 깊은 우려를 받았다. 허나 좀비라는 특성들을 CG를 넘어서는 아크로바틱한 조연과 엑스트라들의 넘치는 연기력으로 뛰어 넘었다.

이 영화는 지난 7일 개봉 18일 만에 1,000만 고지를 넘어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자체의 큰 스토리는 간단하다. 주인공 석우(공유 분)가 자신의 딸 김수안(수안 분)을 부산까지 안전하게 가려는 것. 그 과정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인공 석우와 함께 탑승한 이들의 좀비와 싸워가는 스토리를 차곡차곡 담았다. 게다가 사회에 만연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바이러스를 스토리의 큰 줄기에 그로테스크하게 함께 실었다. 그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좀비들을 싣고 달리는 부산행 속 ktx처럼 영화는 폭주하기 시작한다. 잠시 한눈 팔 틈 없이 그렇게 영화는 관객들을 부산행 기차에 태워버린다.

‘부산행’ 단순한 스토리 영화가 담은 깊은 의미
부산행2
그 폭주하는 영화는 단순한 스토리에 하나의 의미를 담았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거론되는 ‘악의 평범성’에서 힌트라도 얻은 듯. 평범한 악인들의 공포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평범함이라는 그 범주 속에서 표현되는 수많은 평범한 악의 모습. 그 모습과 평범한 시민들이 악인이 되어가는 상황들을 긴박감있게 그려간다. 영화자체는 좀비물이지만 좀비들보다 더 공포스럽게 변해가는 평범한 이들의 거친 현실감을 과감하게 담아낸다.

영화 속에는 바이러스에 감염돼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좀비들이 존재한다. 그 대척점에는 한없이 인간적인 모습을 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 관객들은 부산행 열차에서 표류하며 영화에 몰입하게 된다. 관객과는 달리 영화 속의 대중들은 더욱 표류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는 점점 깊고 어두운 터널 속으로 달려간다. 승객들은 위기에 처하자 자신들이 살기 위해 좀비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 되어 버린다. 이것은 단지 좀비바이러스 상황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스토리 전체가 압도하는 우리사회의 위험성. 그것을 상황이 아닌 내재화된 현실의 위험임을 자각시킨다.

영화 속 미디어들은 좀비 바이러스로 혼란스러운 사태를 폭력시위로 시민들의 눈을 가리며 매도한다. 그걸 보고 순진하게 “나라 어지럽게 왠 데모질이냐”며 손가락질 하는 이. 펀드매니저임에도 자신들의 수익을 위해 개인들의 피해는 상관없이 무책임한 매도를 지시하는 석우. 그들의 평범한 모습들의 결과는 극 전체의 배경에 살포된다. 거짓 정보에 휘둘리는 시민들의 모습과 좀비바이러스의 진짜 위기를 제공하는 평범한 일상의 행동들의 위험한 모순성을 나타낸다.

타인의 고통과 위험에는 둔감한 이들은 자신들의 위험에는 민감하다.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좀비들로 인해 극에 달한다. 수많은 좀비들의 사이를 뚫고 전염자들이 없는 열차칸까지 왔으나 안전한 자신들이 전염될까봐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 문을 잠궈버리는 승객들. 문을 열어달라고 소리지르며 애원하는 이들에게 오히려 “감염된거 아니냐”며 거칠게 손가락질하는 그들의 얼굴에 이미 수치심은 없다. 그저 자신만이 살기위해 타인을 외면하고 오히려 자신들을 위험에 빠뜨린다며 거친 욕설을 내뿜는다. 자신들은 안전할 것이란 착각에 빠진 듯.

평범한 이들의 일상의 악한 모습과 공포에 질린 일반인들의 이기심은 돌고도는 위험의 울타리를 종국엔 함께 만들어가 버린다. 감염자와 비감염자를 분리시키며 평범한 이들이 악마로 변해가는 순간. 영화 속 생태계의 안전망은 무너진다. 사람들은 좀비들과 싸우지만 결국 그들이 싸워야 하는 적은 그들과 같은 공포에 휩싸인 승객들이다. 영화의 큰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그 속 스토리는 평면적이지 않게 좀비와 좀비보다 공포스러운 사람들을 보여준다.

평범한 악의 메타포가 전해주는 공포
부산행3
관절이 꺽이고 목이 돌아가있는 좀비. 피를 토하며 달려드는 그들보다 더욱 공포스러운건 바로 평범했던 사람들이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 외면하고 자신만 살기위해 외면한 그들. 바로  같은 칸에 타고 있던 현실 속의 좀비들. 인간의 가면을 쓴 좀비들은 결국 그들 스스로 자신들만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을 구하지않는다. 그런 그들을 증오한 이가 결국 좀비들에게 문을 열어준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좀비에 대한 공포감이상으로 상황에 대한 분노에 휩싸이게 된다. 그 만큼 영화는 그 평범한 악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공을 드린 흔적이 역력하다. 부산행 열차에 탄 이들 대부분은 극단적 이기심을 가진 이들이 아니다. 좀비라는 상황의 특수성과 우리일상에 익숙해진 평범한 악의 모습으로 위기는 극화된다. 영화의 스토리는 그들의 평범한 악의 모습에 참을 수 없을 만큼 분노를 치밀게 한다.

분노에 휩싸이는 찰나 영화의 가장 큰 반전은 보여진다. 석우에게 다급한 전화. 정작 그가 펀드매니저로 저지른 불의로 인해 모든 문제의 근원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도 사소하고 살아가기 위해 한 일이지만 그 나비효과는 결국 자신과 자신의 주변에 불어오게 된 것이다.

부산행은 결국 이러한 평범한 악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결국 우리가 직접 해결해야할 근원적인 과제를 던져준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회 불의에 눈감고 동조하는 것. 바로 그것이 안전할거라 믿던 제방도 어느덧 무너지게 만든다는 교훈을 알려준다. 영화는 일상적인 악의 모습이 결국 우리 모두를 위험에 빠드릴 수 있다는 사실을 관객들과 교감한다.

부산행 KTX가 쉬지 않고 달려간 이유
부산행4
영화 속 부산행 ktx는 쉬지 않고 달려간다. 영화대부분을 차지하는 좀비들을 가득 싣고. 열차칸 안 밖에 존재하는 좀비들. 그 좀비들을 통해 평범한 우리들 속에 깊숙이 감춰진 진짜 공포스러운 바이러스를 보게 한다. 결국 그 좀비자체의 공포에 쏠린 승객들의 이목에 가려 그들 자신 속에 있는 가장 위험한 바이러스를 보지 못한다. 결국 자신들의 죽음을 치닫게 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

결국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이들은 결국 파국을 맞는다. 좀비가 희생자를 만든다기보다 평범한 이들의 내면 속에 감춰진 정제되지 못한 본능이 자신들을 파국으로 내몰아버린다. 영화는 우리가 일상의 평범한 악 하나하나가 결국 모두의 생존 문제로 귀결될 수 있음을 은유적으로 암시하는 것이다.

영화는 내재화된 악의 평범성에 대해 선동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삶의 생태계에 직접적으로 푸쉬 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평범함 속에 망각으로 방부처리 된 악의 독소들을 나열해주기만 한다. 그런 모습을 나열하기 위해 부산행 KTX는 쉬지않고 달려간다.

영화 부산행은 이미 기술적인 한계를 아크로바틱한 연기력으로 뛰어넘었다. 단순한 스토리마저 그로테스크한 평범한 악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관객들을 영화 속에 주저앉혔다. 그러한 위험한 한계를 넘어섰기에 천만이라는 인정을 받은 영화 부산행. 이제 얼마까지 도달할지 그 종착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영화 속 평범한 악의 모습과 현실 속 악의 모습 모두 너무도 극적으로 닮아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며 내내 드는 의구심은 과연 현실이라면 부산에 도착할 수 있을까? 질문을 지울 수 가 없을 것이다. 영화 속 부산 행 기차는 2시간 만에 도착했지만 현실 속 부산행 기차는 언제 도착할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지 몰라도 영화는 흥행의 열기를 더 이어가려는 듯 보인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더운 부산을 목적지로 삼았기 때문일까?


<인터넷뉴스팀> gk1news@hanmail.net / cnn0428@daum.net
<저작권자 © 미디어리포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기사의견쓰기

- 기사 공유하기 -

<저작권자 © 미디어리포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