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죽음 기다린 철학자… 두 번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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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미디어리포트 뉴스> 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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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석전기> 표지 동서고금의 종교와 철학에 능통했던 석학이자 큰 사상가이며 우리말로 철학을 한 최초의 사상가, 다석 류영모의 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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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류영모 사상 그린 <다석전기> – 정태승 기자

 

다석 류영모. 우리말로 철학을 한 최초의 사상가이자 철학자의 이름이다. 삶과 죽음에 대해, 글과 말에 대해 깊은 통찰을 통한 혜안을 보인 인물이며, 예수와 석가, 공자, 그리고 노자와 장자, 톨스토이, 토인비, 간디와 같은 인물들과 같거나 그 이상의 깨달음을 이룬 성인이라고 한다.

나는 두 번 놀란다. 우리나라에도 인도의 간디나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와 같은 사상가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그런 사실을 여태 몰랐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란다.

지난 6월 28일에 열렸던 ‘오연호의 기자만들기(오기만)’ 총동문회에서 오연호 대표기자는 <다석전기>라는 책을 각 기수(총 50기)에 한 권씩 선물했다. 연초에 자신이 겪은 경험을 깨달음으로 인도한 가르침을 소개하고자 한다며 일독을 권한 것이다. ‘오기만’의 44기 수료생인 나는 담임선생님이기도 한 그가 권하는 책을 일주일간 꼼꼼히 읽었다.

류영모가 지적한 인간 속에 들어있는 수성(獸性)인 삼독은 다음과 같다. 탐은 탐욕(貪慾)을, 진은 진에(瞋恚, 성냄)를, 치는 치정(癡情)을 의미한다. 이 세 가지 수성을 끊어내면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른다는 것이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화도 내지 않고 질투나 음욕을 가지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더하고 덜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셋을 완전히 내려놓고 사는 사람을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본 적이 없다.

탐-진-치의 삼독을 끊어야 동물이 아닌 참인간

다석 류영모의 제자면서 <다석일기>의 저자이기도 한 박영호의 설명에 의하면, 탐의 결과는 부자(富者)이고, 진의 결과는 귀인(貴人)이며 치의 결과는 미인(美人)이다. 각각 자본지상주의, 권력 지상주의, 외모 지상주의를 낳는다는 것이다. 다석 선생의 말을 들어보자.

“사람들은 돈을 모으면 자유가 있는 줄 아나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사람들이 하는 영업이나 경영이 자기 몸뚱이만을 위한 짓이라면 그것은 서로의 평등을 좀먹습니다. 경영을 하게 되면 이익을 추구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평생 동안 모으려고만 하게 될 것이니 자유와 평등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돈에 매여 사는 몸이 무슨 자유겠어요? 매인 생활은 우상 생활입니다다.”

사상가 류영모는 1890년에 태어나 1981년 91세의 나이로 숨졌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겪고 을사늑약을 거쳐 조국이 식민지가 되는 과정과 독립운동가들과 위정자들의 활동을 지켜보았으며, 해방을 겪었다. 그리고 4.19혁명과 5.16군사쿠데타를 경험한다.

그의 역사는 1903년 처음 세워진 기독교청년회(YMCA)와 1907년 개교한 오산학교와 함께한다. 오산학교에서 남강 이승훈과 도산 안창호를 알게 되고, 평생의 제자 함석헌을 만나게 되고, YMCA에서는 연경반 강의를 35년동안 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1930년대에 학교 학적부를 쓰는데 양반, 상민의 계층을 밝히는 신분란이 있었다. 류영모는 자녀들의 가정환경조사서에 직접 평민(平民)이라고 적어 넣었다. (중략) 류영모는 참사람이 되려면 가장 미천한 자리에 서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예수와 석가가 무소유의 삶을 산 것은 이 때문이다. 무소유의 삶이란 거지의 삶이다. 톨스토이가 루바시카를 입고 농사를 지은 것도, 간디가 웃통을 벗고 맨발로 다닌 것도 가장 미천한 자리에 서고자 함이었다”라는 설명과 함께 류영모는 비슷한 시대를 살다간 톨스토이나 간디와 함께 성인으로 여겨야 할 인물로 조명한다.

류영모의 철학과 종교

류영모는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자 하였다. 노동이 없는 삶은 진정한 삶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그는 예수가 젊어서 목공 일을 한 것과 공자가 젊어서 목장 일을 한 것, 만년의 톨스토이가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것은 모두 땀 흘리는 삶에서 진정한 철학과 공부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깨닫고 있었다.

“괜히 충돌하여 남의 잘 믿는 신앙을 흔들어놓을 필요가 없습니다. 신앙은 서로 다른 대로 같습니다. 나도 16살에 입교하여 23살까지는 십자가를 부르짖는 십자가 신앙인이었습니다. 우치무라나 무교회는 정통신앙이지만 나나 톨스토이는 비정통입니다.”

1960년에 류영모가 한 말이라고 한다.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바울로의 대속 신앙이 정통신앙이고 비정통 신앙이란 예수의 영성 신앙을 말한다고 한다.

“그리스도는 전체의 영원한 생명이지 어떤 시대, 어떤 인물의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따르고 그를 쳐다보는 것은 예수의 몸 껍질(色身)을 보고 따르자는 게 아니라 예수의 속알(얼나)을 따르자는 것입니다. 예수의 속알만 말고 먼저 제 마음속에 있는 속알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의 몸도 껍질이지 별수 없습니다. 예수의 혈육(몸)도 다른 사람과 똑같은 혈육입니다. 속알이 하느님과 하나인 영원한 생명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요약된 바울로의 대속의 교의 신앙을 버리고 예수의 영원한 생명인 얼나를 깨닫는 영성 신앙에 이른 것을 알 수 있는 류영모의 육성이다.

다석 류영모는 태어난 지 몇 해를 헤아리는 나이보다는 태어난 날로부터 날수를 세는 것을 습관으로 삼았다. 날수를 세면 하루하루가 죽었다 살아나는 것으로 여겨져 좀더 삶에 경각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숨 쉬는 것까지 숫자로 기록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가 살다 간 날은 총 3만2000일이고 들고 난 숨을 쉰 횟수는 약 9억 번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살다간 나는 참 나가 아니라는 거다.

“죽음이란 없습니다. 이 껍데기 몸이 죽는 거지 죽는 게 아닙니다. 죽음을 무서워하고 싫어할 까닭이 없습니다. 보통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 껍데기 몸이 퍽 쓰러져서 못 일어나는 것밖에 더 있습니까? 이 껍데기 몸이 그렇게 되면 어떻습니까? 진리의 생명인 얼나는 영원합니다.”

평소 류영모가 즐겨 한 말이라고 한다.

오기만 총동창회에는 <다석일기>의 저자, 박영호 선생이 참석했다. “처녀가 시집가는 날을 기다리듯이 하루하루를 보람된 마음으로 즐겁게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한 그날 그의 한마디에서 나는 웃음을 멈추었다. 왜냐하면 따지고 보면 그가 지적했듯이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손바닥 뒤집듯 너무 쉽게 뒤바뀔 수 있다는 사실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책을 읽던 일주일은 우리말로 철학을 한 사상가 류영모에 대해 그리고 그의 제자가 말한 “즐겁고 행복한 기다림”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경건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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