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눈물 흘리게 만든 영만 아저씨의 상처받은 코딱지들에게 던져준 ‘위로와 격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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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미디어리포트 뉴스> 박정훈 기자

‘마리텔’ 영만 아저씨가 코딱지들에게 건넨 위로 

최근 연일 화제를 몰고 다니는 방송이 있다.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출발해 정규 편성된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 그 최대 정점엔 김영만(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 원장) 아저씨의 종이접기가 있다. 방송 이후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자신이 화제의 중심에 당당히 서 있다. <마리텔> 자체 시청률의 굳건한 보증수표인 백종원의 요리교실. 인간계와 천상계로 분리해서 평가를 할 정도의 백주부의 독주 상황이었음에도 그 상황을 일시에 뒤집은 아저씨의 종이접기. 과연 무슨 이유 때문일까?

“어린이 친구들 이제 어른이죠? 어른이 됐으니 이제 잘 할 거에요.”,”우리 친구들 이제 다 컸구나.”, “잘 할 거예요. 이제 어른이잖아요.”

그는 방송 이후 여럿의 어록들을 남겼다. 수많은 네티즌들이 김영만 아저씨의 종이접기의 추억을 상기하며 그의 멘트 하나하나에 눈물을 흘리고 고마워했다. 가장 화려해야 할 자신들의 청춘의 삶의 모습이 모순되어서였을까? ‘화양연화’의 순간이 대체 언제인지 예측하기 힘든 자신들의 현실의 모습 속에서, 자신을 어릴 적 가장 예뻐하던 할아버지를 다시 만나 울컥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방송. 영만 아저씨의 <마리텔>은 이 시대의 수많은 청춘들을 현실에서 안아주고 시청자들은 그를 반겼다.

그렇게 종이접기 영만 아저씨에게 위로받아 감사하다는 분위기는 인터넷을 몇 주간 후끈 달아올렸다. 그에 대한 사람들의 ‘눈물, 감사, 반가움’은 그저 ‘수사’가 아니었다.

상처받은 세대, 상처받는 현실… 그래도 잘 자라 주었구나’

그런 분위기와는 달리 영만 아저씨 본인은 오히려 자신들에게 감사하다던 네티즌들을 걱정했다.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종종 자신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 이유가 자신의 방송을 보고 자란 세대들이 상처를 많이 받을 수 밖에 없는 아픈 세대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방송을 보고 자란 세대가 IMF시절의 어린이들이라고 했다. 경제가 어려운 시기 정서적으로나 감성적으로 치유 받지 못한 상처가 많은 세대라고 이야기 했다. ‘주변의 잣대로 평가받고 상처받고 있지만, 현재의 젊은 세대는 잘해내고 있다’며 상처받은 세대에 대한 걱정과 안타까움. 그래도 잘자라준 고마움의 마음을 전해주었다.

방송 중 노인이 된 자신을 악플 없이 반겨주는 채팅창의 모습들을 보며 놀랐다는 그. ‘잘 자라주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오히려 자신이 고마웠다는 영만 아저씨.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의 가슴 속에선 아이들을 향한 사랑이 담긴 마음은 숨길 수 없었다.

상처받은 청춘들에게 필요한 건 바로 ‘위로와 격려’

최저임금 6030원. 그마저도 보장받기 어려운 현실의 삶들이 존재하고,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제와 같은 불안한 외줄타기 현실에 존재하는 이 시대의 우울한 청춘들. 그 가혹하고도 직설적인 상황에 놓인 청춘의 삶은 적나라하게 위태롭다.

허나 이번 <마리텔> 영만 아저씨에 대한 반응에서 나타나듯이 현재의 젊은 세대들이 우리사회의 시각과는 다르게 바르게 자라주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보이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현실을 겪고 있음을 직감하게 해주었다.

코딱지들. 영만 아저씨의 방송과 소식을 들으며 열광하던 그들은 자신들이, 또는 자신의 주변들이, 아니면 자신들과 비슷한 가정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아왔을 것이다. 허리띠를 졸라 메고, 고통을 견디며 열심히 살아왔으나 더욱 가혹하게 변한 사회를 보고 겪고 있을 것이다. 그저 견디고 있을 것이다.

그들 삶의 순간순간 매번 눈물을 쏟아도 이상할 것이 없는 현실. 그런 그들에게 이 가혹한 사회가 던져준 것은 채찍과 무한 경쟁, 당연한 것임에도 꿈이 되어버린 정규직. 바로 그 잔인한 현실에서 가혹한 삶을 살고 있는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가혹한 경쟁이나 채찍이 아닌 따뜻한 위로와 격려였던 것이다. 늙었다고 자신이 사랑하던 방송에서 쫓겨나듯 사라졌던 영만 아저씨가 어느 날 갑가지 나타나 이 현실에 조언을 던져준 것이다.

그리고 그를 가장 반겨준 것은 다름 아닌 상처받은 세대, 상처받은 삶을 살고 있는 그 코딱지들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바르게 잘 자라준 코딱지들 말이다.

이 위태로운 시기. 그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나타난 종이접기 영만 아저씨. 가장 힘든 청춘 세대들이 가장 꿈 많고 행복했을 자신들의 어린 시절 그 순간으로 그들의 마음을 환원시켜주고 현실의 무거운 어깨를 토닥여준 아저씨. 그런 그를 보고, 작고 어린 존재지만 사랑받고 관심받던 자신들의 코딱지 시절의 모습이 잠시 떠오르지 않았을까?

젊은이들의 꿈을 버린 나라는 희망이 없다

희망을 바탕으로 성장 동력을 만들어 가는 시대가 있었다. 이탈리아 청년 콜럼버스, 최초로 세계 일주를 한 포르투칼의 마젤란, 젊은이들의 희망을 바탕으로 신성장 동력을 만들어 가던 시대. 지금은 성공한 벤처를 꿈꾸기도 어렵고, 성공한 자영업을 이루기도 쉽지 않다. 리스크가 큰 사업엔 덩치 큰 대기업조차 쉽사리 도전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약하디 약한 청년들에겐 ‘나약하다’, ‘중동에 가라’, ‘도전하라’며 다그친다.

그들의 작은 꿈조차 돈이 될 만하면 대기업의 자금들이 휩쓸어 버린다. 성공자체가 어렵다. 작은 커피숍을 희망하던 이들도 소박한 꿈을 꾸려할 때, 대형체인의 골목상권 진입으로 더 이상 그 작은 희망조차 갖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제 현실의 청춘들은 희망의 관성조차 잊은 지 오래된 듯하다.

가진 사람은 더 갖고, 못 가진 사람은 더 못 갖게 되어가는 사회 시스템. 현실의 코딱지들에게 희망은 과연 올 수 있을까. 아둔한 물음 뒤로 이 가혹한 사회는 전년도보다 8.1% 인상한 6030원의 최저임금을 쥐어줄 뿐이다.

이시대의 청춘들, 상처받은 세대, 자신들의 우울한 자화상을 마주해야 하는 가슴 아픈 세대. 흠결이 많은 세상, 합리적이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가슴 아픈 세대들은 정은 잊지 않았다. 자신을 칭찬해주고, 위로해주고, 늘 반가워해주던 아저씨의 작은 위로와 칭찬에도 기뻐하고 울컥하던 청춘들. 또 함께 울컥한 영만 아저씨. 쇠약해진 현실에도 내면만은 정이 넘치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줬다.

“어린이들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마세요. 아직 생각도 작고 머리도 작잖아요.”

그가 <마리텔>에서 남긴 말. 현실의 어린이들이 아닌 왠지 불안하고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 현실의 젊은이들. 그들을 위해, 세상을 향해 던지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인터넷뉴스팀> gk1news@hanmail.net / cnn042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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