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소수에게 길을 묻다. 영화 ‘소수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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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미디어리포트 뉴스> 박정훈 기자

 

 영화 <소수의견>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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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이후 썩 괜찮은 법정영화 한편이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 전문직이 등장하는 드라마와 영화들은 많이 존재하지만 특히도 그 중요성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은 법정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간단히는 법적인 지식을 알려줄 뿐 아니라 사회의 중심을 법이 어떻게 지켜가야 하는지에 대해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법의 지대함과 공정한 법의 중요성을 각인 시키는 것만으로도 법정영화는 제 역할을 하고도 남음이다.

<소수의견>은 대중과 평단에게 ‘수준급’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처럼 영화는 소수의 관객에게만 할당되어지는 기이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반면 같은 기간 개봉한 영화 <연평해전>은 다르다. 연평도 인근에서 북한군 경비정과 우리나라 해군 함정과의 교전을 다룬 이 영화는 의혹을 품을 정도로 개봉관 수를 획기적으로 늘려가며 승승장구 하고 있다. 두 영화 모두 반드시 기억해야 이야기들을 담고 있지만, 현실에서의 비중은 가혹할 만큼 한쪽으로 치우쳐있다.

<소수의견>은 철거현장에서 경찰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인 피고인 박재호. 그런 그를 지방대 출신 신참 국선 변호사 윤진원(윤계상 분)과 세속적이며 그럭저럭 살만하지만 법조계의 비주류인 장대석 변호사가 변호한다. 비주류인 그들이 박재호의 재판을 맡게 되면서 거대한 싸움에 휩싸이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누가 우리의 아들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경찰을 깡패로 만드는가?

영화는 시작부터 경찰의 물대포로 화면을 적신다. 그 젖은 화면에는 회색빛 거친 철거촌의 배경이 가득하다. 마치 철거민들의 처한 상황이라도 알려주려는 듯. 벽인지 전봇대 인지 모를 곳에 찢어진 종이들이 너덜거리며 붙어있다. 철거현장을 점거하고 있는 사람들의 화면 속 모습은 느리고 무겁다.

곧이어 화면은 불길로 가득 찬다. 그 속에 경찰 무전소리가 이어진다. 어둡고 습해보이는 그 철거지역에는 경찰의 물대포와 불길이 복잡하게 섞여버린다. 철거민들의 저항 속에 경찰들은 용역깡패들과 섞여 좁은 골목길에서 분주하다. 철거민들이 던진 화염병에 방패를 든 경찰들은 화염에 휩싸이며 아비규환의 모습을 보인다.

영화는 물과 불을 넘나들며 앵글을 맞춘다. <소수의견>이란 제목도 물과 불의 반복적 시각노출처럼 중의적 의미를 가지고 각각의 관점을 넘나든다. 이 현실 사회 관심 밖의 소수들을 조명한다.

정당한 법의 집행이라면서도 용역깡패들이 우글거리고, 경찰관 직무직행 법을 어겨서라도 강제철거를 해야 하는 경찰. 그렇게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을 깡패로 만드는 국가, 경찰이 깡패가 됨을 용인 하는 사회. 결국 존경받으며 정당한 법을 집행해야 하는 경찰을 ‘견찰’이라고 조롱하게 만드는 나라.

영화는 이렇게 비정상과 정상의 사이에 기대어 우리에게 수많은 피해자들을 보여 준다. 죽음을 맞이한 두 아들들과 그들의 아버지들. 그 곳에서 함께 그 상황을 봐야 했던 경찰들. 결국 모두가 피해자 임에도 경찰들은 피투성이 된 아빠 박재호(이경영 분)을 팔을 꺾고 있다.

보호받는 권력, 내몰리는 약자

 영화 <소수의견>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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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판결이 떨어지기 전까지 선생님은 무죄입니다. 법이 그렇습니다.” (윤진원 변호사)
“그래서 내가 여기 갇혀 있는 거죠?”(피고인 박재호)

영화 초반 두 사람의 짧은 대화. 그 대화는 우리가 간과한 모순된 법의 허위의식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우문현답 같은 단 두 마디의 대사는 이 영화의 전체 줄기를 관통한다. 약자이면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강자이면서 법의 절대적 보호를 받는 누군가들을 묘사한다.

철거로 인한 재개발. 누군가는 이로 인해 엄청난 이득을 챙기게 될 것임을 이 영화는 노련한 한 야당의원의 이야기로 들려준다. 그 누군가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검사들과 검사장까지 나서기 시작한다. 피고인과 합의를 시도하고, 변호사를 압박하고, 거짓 증인을 만들어 회유하기까지 한다.

그와 반대로 싸우지만 힘이 없고, 눈물을 쏟지만 독하기 어려운 낯익은 두 아버지가 마주한다. 세월이 얼굴에 스며든 모습을 한 두 아버지. 자식을 잃은 그 두 아버지. 용서를 택하는 한 아버지와 죄책감의 눈물로 고개를 숙이는 또 다른 아버지가 있다.

두 아버지는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철저히 희생되어야 할 존재다. 죽음을 맞이한 죄 없는 두 아들과 그들의 두 아버지들. 그들은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법이라는 이름의 심판과 아들의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결국 서로가 피해자인 상황에서 국가와 사회는 법의 심판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치우친 법의 결대로 재단한다.

변하지 않는 현실을 영화 속으로 소환한 영화 <소수의견>

 영화 <소수의견>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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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현실에서 존재할 만한 소수의 이야기를 끝까지 다뤘다. 누군가에겐 당연히 주어졌을 자신의 생존 터. 그런 당연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박재호와 영문도 모르고 죽었을 한 경찰(의경)의 아버지. 영화는 그렇게 가혹한 현실을 스크린으로 치환했다.

사회적 약자인 두 아버지뿐만 아니라 개천에서 용이 될 수 없는 현실을 보여주는 윤변호사와 장변호사. 목숨 걸고 싸우고,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 쳐도 결국 소수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들의 삶은 자신들이 처한 사회생태계 속에선 크게 다르지 않음을 조명하며 그들이 함께 싸워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 단, 영화 스스로 무거운 주제임을 알고 있는 듯 시작부터 끝까지 쉴 새 없이 관객의 시선과 감정을 두들겨주었다.

십 수 년 전 직접 본 철거현장. 위태롭게 지어진 3층 높이의 회색 철탑 위 철거민들은 자신들의 죽음을 외치고 있었다. 경찰들은 그 철탑을 에워쌌다. 회색의 철탑에서는 화염병을 던졌다. 경찰은 물대포를 쏘아댔다. 컨테이너 박스에 용역깡패 같은 사람들이 가득 실렸다. 그들은 크레인에 채워져 철거민 머리위로 자신들을 드리웠다. 그들과 경찰, 철거민 사이로 물대포와 화염병이 오고갔다.

크레인에 위태롭게 매달린 컨테이너 박스. 그 컨테이너의 문이 열리자 사복을 입은 사람들은 날렵하게 뛰어내렸다. 빠르고 매섭게 쇠파이프를 휘둘러댔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린 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퉁퉁 젖은 얼굴을 한 사람들이 연이어 들것에 실려 나왔다. 대기하던 구급차는 알고 있었다는 듯 부지런히 사람들을 날랐다. 그렇게 상황은 일사불란하게 마감되었다. 죽음을 외치던 그 사람들은 그날 그 철탑과 함께 부서지고 무너져 내렸다.

오래전 눈앞에서 보았던 잔혹한 모습은 아직 현실 속에서도 진행형이고, 영화 <소수의견> 속에서도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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