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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아이 캔 스피크’가 흔든 웃음과 눈물의 경계:미디어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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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아이 캔 스피크’가 흔든 웃음과 눈물의 경계

미디어리포트 | 기사입력 2017/10/10 [17:36]

영화‘아이 캔 스피크’가 흔든 웃음과 눈물의 경계

미디어리포트 | 입력 : 2017/10/10 [17:36]

 

피해자가 위로를 전하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 그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기존의 일반적인 패턴을 버렸다. 일본군 성노예피해자 할머니들을 다룬 다른 영화들과 다르다. 영화는 초반 가볍고 유쾌함을 담아 시선을 고정시키며 후반부까지 관객을 지치지 않게 이끌어간다. 유쾌함과 우울함의 경계를 흔들어가며 옥분 할머니의 고통을 이겨내는 중의적인 모습까지 담았다.

영화는 마치 이끼 같은 주인공 옥분(나문희 분)은 내세운다. 어느 누구에게나 번거롭고 귀찮지만 꼭 존재해야 하는. 그녀는 수많은 민원과 준법정신으로 누구에게나 비판과 지적의 눈길을 쉴 새 없이 겨눈다. 자신의 관심을 거두지 않고 자신의 주변을 살피는 영화 속 그녀의 주변인들과 해당구청 공무원들은 그런 그녀가 공포스러울 정도로 괴로운 상대다. 영화는 그렇게 옥분을 고약한 할머니로 비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담은 영화는 초반 단순과격하게 서사된다. 일상의 옥분이 좌충우돌 주변과 싸우는 모습은 지나치다 못해 과해 보일정도다. 무려 20년간 8천 건이라는 민원을 넣은 그녀. 도깨비 할매로 불리며 자신의 이웃들인 시장 구석구석의 문제들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물론 어린학생의 라면조각을 먹는 모습도 쉽사리 지나치지 않는다.

그렇게 영화는 주인공 나옥분 여사를 통해 어쩌면 우리주변에 익숙한 얼굴로 살아있을법한 할머니의 모습을 그렸다. 그녀를 통해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를 입은 현실의 할머니들을 스크린으로 소환한다. 그 할머니를 통해 우리가 모르고 지나쳤던 할머니들을 익숙하게 우리 앞에 그리며 웃음과 눈물의 경계 속에서 현실을 관조하게 만든다.

그녀가 그렇게 자신의 주위에 수많은 관심을 보여준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 억척스런 관심은 어쩌면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몸짓이었음을 영화는 중반을 가지 않아 관객에게 고백한다. 그런 와중에 나옥분 여사가 자신의 피해사실을 숨기며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영화는 중간 중간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위안부 성노예강제 동원 후유증이 커다랗게 남아있는 옥분. 그녀는 피해자임에도 숨고 자신의 피해사실을 숨긴다. 피해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다니는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 정심(손숙 분)과 달리 그저 피할 뿐인 그녀.

무서울 것이 없어 보이던 옥분이 보이는 모순된 모습은 그녀가 지나온 시간을 쉽사리 지나치지 못하게 한다. 그런 그녀도 아이러니하게 피해자에도 겨누는 사회적 냉대를 얼마나 두려워했을지 잠시 우리를 흔들리게한다. 어쩌면 피해자의 편에 서지못하고 가해자의 편에 서서 손가락질을 하던 우리 자신에게 내재화된 비겁함을 이미 그녀는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그녀는 소수가 아닌 다수의 용기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결국 영화 속에서도 현실을 직감한 그녀는 결국 자신을 드러내고 싸우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영화는 막판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스스로 맞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싸우는 모습을 그린다. 그 싸움의 와중에 그 속에서 살결이 처참히 찢어지는 한 여인의 고통은 영화 속에서도 감추지 못했다.

역설적인 그녀의 “아임 파인 땡큐, 앤유?”

영어를 배우기 위해 필사적인 그녀. 자신이 반드시 배워야 하는 영어를 나이든 그녀가 익히기란 쉽지 않다. 그러다 우연히 원어민과 영어회화를 자유롭게 하는 민재(이제훈 분)의 모습을 본 그녀. 어쩌면 자신을 가장 싫어할 공무원 민재에게 온갖 미소를 보이며 도움을 청한다.

그 틈 속에서 남몰래 선행을 베풀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순간. 그 지점을 영화는 옥분과 민재의 만남에서 찾는다. 동생 영재(성유빈 분)의 밥을 챙겨주는 모습을 보며 마음을 열 개 된 민재. 그렇게 옥분의 소원이던 영어 과외를 하게 된 그.

“아임 파인 땡큐, 앤유?”

그녀가 씩 웃으며 말한다. 첫 회화수업에 그녀가 내뱉은 말. 그 말은 영화 내내 그녀의 모순 된 삶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나타낸다. 자신이 괜찮다는 것을 강변이라도 하듯 내내 주변의 잘못을 지적하고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기 위해 수많은 민원을 넣었던 그녀. 영화는 저 문구에 그녀의 삶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담았다. 피해자임에도 그 사실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비정상적인 것들이 정상적인 상황. 그 속에서 가장 외롭고 힘들었을 그녀. 그런 그녀가 고착된 저 영문 구문처럼 스스로 ‘괜찮다‘고 주문을 걸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현실의 삶의 무게 속에서 외로운 우리들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까?

그렇게 마음을 베풀고 지내면 언젠가 또 다른 가족이 생긴다는 사실을 암시하듯 어느 덧 추석 밤 그들은 소박하지만 행복한 한 가족의 저녁상을 함께한다. 후반부 영화는 못 배우고 독해보이는 옥분의 반전되는 인간적인 모습을 작위적이지 않게 보여준다.

‘유쾌한 승리 그림 담지 않은 영화’ 아직 달라진 것 없는 촛불의 현실과 닮은 아이러니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영화는 전후반부로 나누어 일본군 성노예피해사실을 숨겼던 그녀와 피해사실을 말하는 그녀를 비추고 있다. 모종의 슬픔과 두려움에 맺힌 한까지. 그 이중적 구조 속에서 정작 그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자신의 피해를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뼈 속까지 새겨진 외로움과 상처를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게 아니면 피해자를 겨누는 가혹한 사회적 시선을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영화가 말하는 시선은 결국 참담한 고통이 늘 숨겨진 주변에 존재할 수 있음을 말하고 그들이 얼마나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또한 자신들의 트라우마를 숨겨가며 우리주변에 공존하고 있음을 넌지시 나타낸다.

영화는 결코 유쾌한 승리의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2015년 위안부합의가 우울하게 진행 중인 것처럼 현실의 그레이한 모습을 덧대거나 채색하지 않고 그대로 담았다. 그 속에서 담담히 우리 곁에 익숙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많은 현실 속 옥분의 모습을 각인 시켰다. 마지막으로 “아이 캔 스피크(나는 ~을 말할 수 있다)”에 빠진 목적어가 무엇인지 우리스스로 질문하게 만들었다.

올해 들어 네 분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돌아가셨다. 올 1월 박차순 할머니, 4월 이순덕 할머니, 7월 김군자 할머니, 8월 하상숙 할머니가 자신들에겐 너무도 처참하고 가혹한 세상과 이별했다. 이제 36명의 피해자 할머니들이 남았다.

시민들의 촛불로 정부가 바뀌고 대통령이 바뀌었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현 정부도 지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재검토방침을 밝혔지만 정작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정보공개요청은 비공개를 통보한 상태다. 지난 2015년 한·일 위안부합의가 어떻게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는지 우리는 아직도 알 수 없다. 그 와중에 일본의 공식사과 없이 건네진 처참한 10억 엔이라는 돈만 남았다.

우리가 처한 현실은 영화와 별반 다르지 않다.

“와주어서 고맙다. 여러분이 있어 든든하다” 매번 나눔의 집에서 뵈었던 현실의 할머니들이 해주시던 말. 그럼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영화 밖 현실은 영화 속과 같이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런 가혹한 현실 속에서 가장 외롭고 힘들었을 영화 속 그녀가 오히려 우리에게 웃으며 위로를 전하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영화가 끝나고 내내 귓속을 맴도는 나옥분 여사의 말들. 그런 영화 속 그녀가 우리에게 마지막 말을 건넨다.

“아임 파인 땡큐, 앤유?”

우리는 과연 언제쯤 그녀들에게 재대로 된 위로를 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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